나는 딸과 오래 대화할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아빠가 되기 전부터 마음속에 그려 둔 장면이 하나 있었습니다.
조금 큰 딸과 나란히 걷는 모습이었습니다.
공원일 수도 있고, 숲길일 수도 있고, 어쩌면 산길일 수도 있습니다.
어디인지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냥 둘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천천히 걷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등산을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운동을 좋아해서도 아닙니다.
그저 그런 모습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딸이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고,
친구 이야기를 하고,
좋아하는 사람 이야기도 하고,
아빠에게 쉽게 꺼내기 어려운 고민까지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이.
나는 그런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무엇이든 알고 있는 아빠보다,
딸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아빠.
대단한 가르침을 주는 아빠보다,
딸이 보기에 배울 점이 하나쯤은 있는 아빠.
그리고 아이가 커서도 부담 없이 옆에서 함께 걸을 수 있는 아빠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아빠가 되어 보니 현실은 생각과 조금 달랐습니다.
좋은 아빠가 되는 일은 거창한 무엇이 아니었습니다.
피곤한 날에도 한 번 더 웃어주는 것.
바쁜 순간에도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해도 다시 대답해 주는 것.
아이의 마음보다 내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지 않도록 참는 것.
그런 사소한 일들이 오히려 더 어려웠습니다.
나는 좋은 아빠가 되어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화를 낸 날도 있습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제대로 웃어주지 못한 날도 있습니다.
아이의 말을 듣는 척하면서 다른 생각을 한 적도 있습니다.
다온이가 잠든 뒤에야,
조금 더 다정하게 말할 수 있었는데 하고 후회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끔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나는 지금 잘하고 있는 걸까.
다온이에게 좋은 아빠로 남을 수 있을까.
아마 많은 부모가 비슷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잘하고 싶기 때문에 부족한 모습이 더 크게 보이고,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작은 실수도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나 역시 아직 답을 찾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
아이가 건네는 말을 귀찮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아이가 언젠가 자신의 이야기를 편하게 꺼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
시간은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금은 작은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지만,
언젠가는 친구와 걷는 시간이 더 즐거워질 것입니다.
아빠보다 친구에게 먼저 고민을 털어놓는 날도 오겠지요.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아이가 자신의 세상을 만들어 간다는 뜻이니까요.
그래도 가끔은 아빠 옆에 와서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한마디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사이로 오래 남고 싶습니다.
그때 나는 정답을 알려주는 아빠보다,
아이의 이야기를 서두르지 않고 들어주는 아빠였으면 좋겠습니다.
무조건 가르치려는 사람보다,
같이 고민하고 함께 걸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언젠가 정말 둘이 나란히 걷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곳이 산길이어도 좋고,
동네 공원이어도 좋고,
집 앞 골목이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소가 아닙니다.
딸이 내 옆에서 마음 편히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 역시 딸의 말을 들으며,
한 사람의 아버지로 계속 배우고 있다는 것.
내가 바랐던 것은 아마 그런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딸이 힘든 날에도,
기쁜 일이 생긴 날에도,
부담 없이 옆에서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
그런 아빠가 되고 싶다는 마음만큼은
아빠가 된 첫날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습니다.
